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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이야기/부귀영화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gster)

 2008년 새해 첫날에 본 영화는 <아메리칸 갱스터>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들은 갱 영화를 '적어도' 싫어하진 않는다. 아마 권력을 지향하고 힘을 과시하길 내심 원하기 때문에 법이라는 강력한 틀조차 기볍게 무시하는 무법자같은 갱들의 이야기는 반면교사로 삼기도 하지만 은연 중에 주인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치환하면서 일종의 희열과 쾌락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걸작으로 칭송받는 일련의 갱스터 영화에는 단순한 폭력과 권력투쟁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다. <대부>가 그렇듯,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좋은 친구들(굿 펠라스)> 같은 것들 말이다.
이쯤되면 갱스터(Gangster) 영화는 갱스타(GangStar)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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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 광고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의 감독으로 소개되지만 그는 <블레이드 러너> 혹은 <에이리언>으로, 아니면 <델마와 루이스>으로 대변되어야 하는 감독이다. 물론 주연배우에 러셀 크로우가 포함되어 있기에 <글래디에이터>로 광고한 것이겠지만 (하긴 <어느 멋진 순간>이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다.) 리들리 스콧과 갱스터 영화는 언뜻 보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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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갱스터>는 <갱스 오브 뉴욕>의 현대판이나 뒷골목 버전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역사는 의심할 여지없이 폭력에 근거한 역사다. 현재도 매일같이 일어나는 총기사건은 가장 미국적인 사건이다. 매일 전쟁을 일으키고 수습하는 척 해야 산업이 돌아가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던가. 공화당은 아예 드러내놓고 전쟁을 옹호하고 민주당은 앞에선 그렇지 않은 듯 하지만 그들도 무기사업, 전쟁이 필요하단 건 인정한다. 물론 이 영화에선 폭력보단 뉴욕의 뒷골목을 휩쓸던 마약이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마약이란 절대적인 황금어장을 감싸는 것도 결국엔 폭력이다. 게다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다. 이 영화에 연관되는 영화는 또 있다. 바로 2명의 스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마이클 만의 <히트>. 아마 아직 <아메리칸 갱스터>를 보지 않았고 보러 갈 계획이 있다면 적어도 <히트>를 다시 한 번 보고 <아메리칸 갱스터>를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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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크 루카스는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벌지만 가족에겐 끔찍한 사람이다. 동생들을 건사하고, 조카가 메이저리그에서 합법적으로 성공하길 바라고, 교회에 출석하고 모시전 보스 "범피"가 하던대로, 자신이 배운대로 빈민들에게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세기의 대결에선 가장 좋은 좌석에 앉아서 조 루이스와 인사를 나눌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의상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쓰고 마약을 브랜드화하여 펩시에 비교하고 중독자들의 신용에 신경을 쓰는 나름대로 비지니스맨이다. 자신은 서슴없이 불법과 죄악을 저지르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인기가 좋으니 이거 뉴욕 시장으로 출마했어도 되었을 만 하다. 리치 형사는 마피아와 결탁하는 등 부패가 만연한 경찰 사회내에서 나홀로 독야청정한 청백리이긴 하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아무 여자하고나 잠자리를 갖는 사람이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구분하진 말자. 이젠 전형적인 캐릭터는 고루한 방식이 되어버린지 오래니까. 게다가 정말 나쁜 녀석은 따로 있지 않나.

 영화는 프랭크와 리치의 이야기를 평행하게, 그리고 세세하게 보여주다가 영화 막판에 단서를 잡은 리치가 수색을 벌이면서 교점을 맞게 된다. 리치는 마약 반입의 현장을 잡기 위해 위험한 수색을 하는 한편, 뉴욕의 특별 마약 수사관 트루포 형사는 자신이 꿀꺽할 돈을 찾기 위해 프랭크의 집을 수색하는 데 이 두 다른 시퀀스들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비로소 선악을 아니 누가 덜 나쁜 놈인가를,누구를 단죄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영화 중반에 약간은 지루한 공방전을 펼치던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야 기대하던(!!!) 총질도 나오고 액션이 가미된다.

 리치 로버츠가 아내와 법정다툼을 벌일 때의 분위기는 <조디악>과 비슷하다. 같은 촬영감독이어서인지,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시대를 재현하는데 같은 패턴을 쓰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안 그래서 여러 영화가 겹치는데 난데없이 <조디악>까지 겹치니 혼란스럽기도 하다
.
사족: 영화의 자막에 "장계석"이 나온다. 국민당이 휩쓴 지역이면서 "장계석"이라고 나오는데 "장개석"의 잘못이 아닌가 싶다. 그 밖에도 자막은 약간 이상한 구석들이 있다. 누가 번역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