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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이야기/부귀영화

데쓰 프루프(Death P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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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멀티플렉스의 횡포-

 새 밀레니엄이 닥치기 바로 직전, 아니 더 정확히는 1998년 강변CGV개관이란 사건은 한 극장에서도 여러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선택의 폭을 넓힌, 관객의 편의를 극대화시킨 개념이라 하여 그 이후 멀티플렉스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그렇다. 예전엔 하나의 극장에서 많아봤자 서너개의 스크린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보고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선 신문의 광고에서 어느 극장에서 개봉하는지 손가락을 짚어가며 찾아야하는 번거러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5개 스크린 이상을 갖춘 멀티플렉스는 개봉중인 웬만한 영화는 모두 상영할 수 있을 정도여서 영화를 보고자하는 사람들은 모두 멀티플렉스를 찾기 시작했다. 게다가 넓은 로비에 갖춘 각종 부대시설로 인해 영화시작 시간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 하는 사람들은 굳이 영화관 바깥까지 나가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다보니 철옹성같던 종로3가의 트로이카도 결국 멀티플렉스로 다시 태어났으며 99년까지 70mm필름을 상영할 수 있었던 마지막 극장인 대한극장도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좇게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종로극장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코아아트홀 같은 중소업체는 멀티플렉스로 갈아탈만한 자본이나 공간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시대의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폐관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관객의 편의를 맞춰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멀티플렉스가 내걸었던 허울좋은 간판은 진작에 깨져버렸다. 메이져 배급업자가 극장을 갖추고 있다보니 CJ엔터테인먼트는 CGV,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롯데시네마, 쇼박스는 메가박스를 통해 자신들이 배급하는 영화를 자신들 소유의 극장에서 집중적으로 틀어버림으로써 때깔좋던 관객의 권리는 이미 후퇴하였고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볼 영화를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개의 스크린을 갖춘 극장에서 5개의 스크린에 같은 영화를 틀어댄다면 마침 데이트코스로 극장을 찾았던 연인들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극장을 찾은 나들이관객들에겐 그 영화가 인기가 좋은 영화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게 마련이다란 명제를 거스르긴 힘든가 보다. 아님 있는 놈들이 더 한다...라든지....
  게다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조차도 틀지 않는다니... 차라리 그 멀티플렉스란 간판을 갈아엎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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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주억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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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런 투박한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단순히 내가 보고자했던 영화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그 수고와 아쉬움을 토로하는거다. 쿠헤헤... 아무리 스폰지에서 수입했기로서니 이런 영화가 어찌 멀티플렉스에선 찾기가 힘든건지... 아무래도 <플래닛테러>가 나올땐 그냥 스폰지하우스를 찾아야겠다.
 하긴 내가 이 영화를 초현대식 극장에서 보고자했던 것도 실수라면 실수지만...
 내가 어릴 적엔 동네가 작다보니 주말이나 명절, 크리스마스에 하는 나름 블록버스터인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기 위해선 작은 극장 안에 빽빽히 들어선 관객들로 인해 앞사람 머리를 피하며 힘겹게 보거나 지정좌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앞줄을 택하거나 차라리 서서 영화를 보거나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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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주중엔 그리고 낮시간엔 사람이 무척이나 한산했다. 어느 때에는 관객이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과 어느 아저씨 한 명 뿐인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 아저씨는 맨 뒷자리에서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대며 한가로이 영화를 감상하셨더랬다. 그리고 동시상영을 할 땐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그리 탐탁치 않은 영화를 보면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한 사전포석작업도 이루어졌었다. 그렇게 북적대고 약간은 소란스러웠으며 구운 오징어 냄새와 알 수 없는 향기로 가득찼던 영화관에서의 추억은 정말로 내가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시절로 안내하곤 한다.
  그리고 이 타란티노의 영화는 그 시절의 영화를 위한 헌사다.(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대한 것이지만 내게 느껴지는 감성과 그리 어긋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빛나는 그 이름: 쿠엔틴 타란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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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이 빛나는 이름은 내게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사람의 이름이다. 그의 머릿글자를 따면 QT다. 이름마저 이 얼마나 큐티한가!!! 처음 그의 영화를 본 건 비디오방이란 광풍이 휘몰아치던 95년의 일이다. 비디오 테이프의 겉표지를 장식한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이란 타이틀에 이끌려ㅡ아니 더 정확히는 좀 '야리꾸리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ㅡ 골랐지만 그것이 가져다 준 충격은 당시엔 토네이도급이었고 쓰나미급이었다.
  바로 그 찬란한 <펄프픽션>으로 깐느영화제를 뒤흔들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이미 그 이전에도 <저수지의 개들>를 연출한 감독으로, <트루로맨스>의 각본을 쓴 작가로서 명망높은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꿈꾸는 배우로서의 인생은 연기학원을 꾸준히 다녔음에도 변변치 않지만 그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물론 그의 연기는 그가 연출한 영화에서 손쉽게 볼 수 있으며 이번 영화에서도 바텐더로 분해 절정의 연기력(!!!)을 뽐내기도 했다.
  CSI 시즌 5의 마지막 에피소드(Grave Danger)를 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CSI를 즐겨보진 않지만 우연히 MBC에서 본 "생매장"이란 타이틀을 붙인 그 연속된 두 편의 에피소드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꽤나 타란티노틱하군"하던 느낌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그만큼 타란티노는 독창적이고 특별하다. 이같은 독특함은 제 2의 타란티노라고 일컬어지는ㅡ가이 리치, 조 카나한 등을 위시한ㅡ 많은 감독들이 갖추지 못한 재능이다. (물론 가이 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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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빌>을 통해 쇼브라더스와 쿵후영화에 대한 오마쥬를 바쳤던 타란티노는 그 이전에 이미 <펄프 픽션>에서 존 트라볼타, <재키 브라운>에서 팸 그리어를 기용하는 등 잊혀진 배우를 통해 꾸준히 옛 영화들에 대한 헌사를 바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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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도 워터프루프가 나오는데 자동차라고 데쓰프루프가 없으랴?!!!
  이번 영화도 노골적으로 그에 대한 오마쥬를 아낌없이 드러낸다. 일단 <그라인드 하우스>란 영화를 만들 아이디어(물론 로베르트 로드리게즈가 먼저 입 밖으로 낸 것이긴 하지만)를 낸 것부터 시작하여 영화내내 배우들이 읊어대는 '60, '70년대 영화제목들은 타란티노가 경외해 마지 않는 영화들이며, 그 시대 느낌을 위해 필름에 낸 스크래치(세로로 줄이 가 있거나 지문이 있는 듯한)와 약간은 불편하게 지익~칙칙 소리, 필픔을 잘못 편집한 듯한 효과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쇼브라더스식의 엔딩씬은 너무나도 노골적이며 즐겁다. 혹 이런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관객의 불편함은 어쩌냐구? 영화는 이미 처음에 영화 등급이 제한등급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지 않았던가!!!
  <데쓰 프루프>는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 단락은 위에 말한 것처럼 옛 영화의 형식을 따르며 자동차 추격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옛 영화에는 직접 스턴트를 통해 날 것 그대로 보여줬지만 요즈음엔 컴퓨터그래픽으로 점철된, 일종의 페이크(fake)를 통한 때깔만 좋은 영화만 양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그리고 뒷 단락을 통해 직접 그 날 것 그대로의 스턴트와 자동차 추격을 선보인다. 화면은 현대적이되 정신은 올드한 채로 말이다. 이야기가 약간은 뜬금없기도 하고 허점도 보이지만 그런 것이 B급 무비만 가질 수 있는 특징이며 앞뒤 재지 않고 즐거움만 선사할 수 있는 특권이고 영화가 지닌 특별함이다. 대사가 너무 많고 지루하지 않냐고? 배우들이 쉴새없이 쏟아내던 수다들은 모두 마지막 장면(앞 단락이건 뒤 단락이건)을 위해 잘 다져진 교두보다. 그러니 그 많은 수다들을 귀담아 잘 들어놓아야 한다. 대사 도중에 나오는 LBJ호수를 들으며 르브론 제임스를 떠올린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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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타란티노가 직접 촬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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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는 11월쯤에나 개봉한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