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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이야기/부귀영화

舊시네코아, 허니와 클로버

대학 신입생 때와 군 입대 전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가는 곳은 언제나 종로2가 있는 시네코아나 코아 아트홀이었다. 서울극장, 피카디리, 단성사의 종로 3가 트로이카쪽은 너무 붐비기도 하고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영화 내내 앞사람의 뒤통수와 어깨를 감상하기엔 너무 돈이 아깝지 않은가!).

CGV(강변점)라는 당시 Cheil Jedang(제일제당)과 Golden Harvest, Village라는 한국, 홍콩, 호주의 영화업계가 똘똘 뭉쳐 만든 멀티플렉스 영화체인이 막 시작할 때였는데 강변은 가기에 너무 멀 뿐더러 가더라도 거의 매진되기가 일쑤였기에...

극장의 더 좋은 시설을 찾아 시청근처 삼성본관 옆에 있던(삼성생명 내부였지 아마) 씨넥스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접근성의 용이함이 떨어지는 씨넥스보다는 가깝고 더 많은 스크린을 갖춘 씨네코아는 나의 단골 극장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시네코아에서 영화를 보고 종로서적에서 책을 훑어보기에 더 편했기에. (근데 당시 씨넥스의 시설은 가히 최고였다. 단관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같은 영화를 보러 간다면 "굳이" 찾아갈만큼...)

또한 시네코아에서는 영화를 보러 올라갈 때는 엘레베이터를 이용하지만 나올 때는 계단을 통해 걸어 나올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똑 불편하지만은 않은게 계단 밖 창을 통해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낮에는 별로 밖을 본 기억이 없다)을 볼 수도 있었고 계단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본 감상을 떠드는 것이 본의 아니게 들려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볼 수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리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종로서적은 파산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얼마 전엔 코아 아트홀마저 없어지더니 부지불식 간에 씨네코아도 스폰지하우스라고 바뀌어 버렸다. 뭐 시네코아가 코아 아트홀부터 시작했지만 코아 아트홀이 문을 닫았을 때 이런 사태까지 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으니까.

"이터널 선샤인"의 빛나는 상상력으로 이름을 빛낸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을 보기 위해 검색한 극장에서 나온 낯선 이름, 스폰지하우스. '스폰지하우스는 뭐지?'하면서 찾은 결과는 舊시네코아. 아....씨네코아도 결국.......

스폰지하우스에 갔지만 수면의 과학이 한 타임 건너뛰기에 아오이 유우의 얼굴만 보면서 "허니와 클로버"를 봤다.

씨네코아가 망한건지, 스폰지하우스로 이름만 바꾼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전 씨네코아에서 그리 많이 변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초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꿀벌과 클로버가 있어야 한다.To make a prairie it takes a clover and one bee"

에밀리 디킨슨의 "초원을 만들기 위해선(To make a prairie)" 라는 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청춘을 그리는 영화다.

다케모토는 미대생답지 않은 평범함을 지닌 덕에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 교수님의 조카인 하구미를 보면서 벚꽃이 내리는 환상적인 모습과 함께 첫눈에 반한다. 하구미는 미술에 천재성을 보이며 모든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 와중에 학교로 돌아온 조각전공인 또 다른 천재, 모리타와 예술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 한편, 마야마는 아르바이트하는 곳의 사장에게 소토커적인 연정을 품지만 도예과의 야마다는 그런 마야마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도 제대로 못하는 심약한 다케모토, 미술, 예술에 빠져사는 하구미와 모리타, 연정을 넘어 스토킹을 마다않는 마야마, 마야마를 닮은 듯한 사랑을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야마다... 모두 흐드러진 벚꽃의 찬란함을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사랑한다는 데에 고맙다는 말로 대신할 만큼 순수한...(더 시간이 지나면 순진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벚꽃을 좋아하지만 벚꽃이 지고 나야 편안함을 느낀다는 다케모토의 말처럼 청춘도 지나고 나야 그 때가, 그 시절이 청춘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럼 나의 청춘은 언제였을까, 혹시 지금이 청춘인건가? 진짜 운명의 장난은 늦기 전에 어떤 게 맞는지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 늦지는 않았을지... 아직 갈 길이 많은데........


청춘靑春. 이 얼마나 가슴벅찬 단어인가! 젠장할... 




아오이 유우를 보기 위해 봤지만 야마다 역을 맡은 세키 메구미도 예쁜 걸~~..




영화에서 모리타가 간장으로 그린 그림. 실제로 그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문외한인 내 눈에는 정말 환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