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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이야기/부귀영화

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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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부재의 시대에, 혹은 그 상상력의 실체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대사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넘쳐나는 가슴 시린 이야기가 많은데 이 영화가 바로 그 이야기 중 하나를 다루고 있다.

자,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고로 스포일러니 뭐니 자시고 할 것도 없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까지의 이야기. 독재자가 되고 싶어하는 자가 광주의 민간인을 폭도로 몰고 공포정치를 실행하였고 그에 맞서 당당히 싸우고 산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뭐, "꽃잎"이나 "박하사탕"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추상적으로 그려냈거나 개인이 겪은 역사 가운데 하나로 표현되었으니 아마 정면으로 다룬 것으론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영화 속 이야기는 언뜻 태극기 휘날리며와 유사한 면을 보인다. 사건의 직전까지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그 중 형제가 있었고 동생을 위해 형은 헌신한다. 그리고 형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코믹한 캐릭터의 주변인이 있다.
뭐, 많은 자본이 투입되다 보니 안전한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런 의미있는 대작이 쓰러지면 다시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기가 힘들어지니 부담이 컸으리라. 그런데 감독의 전작에서 나온 대사를 똑같은 배우가 재생산하며 웃음을 유발하려는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전작을 잊지 말아달라는 건가? 영화는 내내 슬픔이 관통하는 가운데 때때로 코믹한 요소를 가미하면서 환기시킨다.

영화는 위의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그리고 여주인공의 외침처럼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 때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아픔, 기억을 잊지 말아 달라고...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는다. 아니, 잊을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덮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네들이 아직까지 모든 정치 권력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굳이 "모든 영화는 정치적이어야 한다"라는 알트먼의 말이나 "모든 문화적 텍스트는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란 알튀세르의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정치적이다. 아니 정치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에만 머무른다.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준장이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무마한다. 누가, 어찌하여, 무슨 목적으로 이들을 슬픔속에 가뒀는지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나타나기는 한다. 신부의 비유적인 말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피하고 있다. 다만 간신히 위로만 해줄 뿐이다. 27년이란 세월이 아직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나는 그 이상을 원한 것인지.
영화를 보면서는 슬픔과 울분이, 영화가 끝나고선 아쉬움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비단 나 혼자일까? 



영화를 보고 일주일 이상 지난 후에 쓰니 영화 자체에 대한 기억이 벌써 흐릿하다...허허허